내가 받았던 피아노 교육

30년 쯤 되었나, 초등학교 때 2-3년 피아노를 배웠었고, 이후에는 손도 안대고 있었다. 마침 최근 딸 아이를 위해 디지털 피아노를 하나 구입했고, 이 기회에 혼자서 틈틈히 다시 연습하며 책 또는 인터넷 상의 동영상 강의들을 찾아 배우다 보니, 예전에 내가 받았던 피아노 교육이 적절했었는지 생각할 기회가 있었다. 더 나아가 이를 전반적인 한국 교육의 문제에 빗대어 비교해 보려고 한다. 물론 나는 음악이나 교육 관련 전문가는 아니므로, 한 명의 교육자로써의 개인적인 의견 정도로 봐 주시면 좋을 듯 하다. 여기에서의 피아노 교육은 피아니스트를 목표로 하지 않는 일반인들에 대한 것이라 가정한다.

우선 하나의 악기를 배움으로써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어느 재즈 연주자의 말을 빌면, vocabulary, 빠른 손가락 놀림, 기본 이론 (scale, chord, 등), 듣기 연습 (training ears)의 네 가지라 하는데, 재즈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생각된다. vocabulary의 의미는 연주자의 “어휘력”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 하고, 손가락을 사용하는 악기인 경우 반복연습을 통한 빠른 손가락 놀림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손가락을 안 쓰는 악기의 경우는 그에 해당하는 적당한 몸놀림으로 대체하면 될 것이다). 또한, 깊은 음악 이론과 연주는 별개일 수도 있지만, scale과 chord와 같은 기본적인 이론의 이해는 악기 연주에 필수이며, 연주를 듣는 능력도 연주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된다.

반면에, 기존의 피아노 교육은, 두 번째인 손가락 운동에만 너무 치우치는 듯 하다. 여기에 빠르게 악보읽는 능력을 포함해서. 물론 높은 수준의 연주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지만, 미국 교육방송인 PBS의 프로그램 Piano Guy의 호스트인 Scott Houston 이 지적하듯이 (youtube 채널 참조), 일반인들에게는 피아노에 대한 재미를 잃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보통 사람들은 거창한 클래식 피아노 곡보다는 대중적인 곡이나 노래 반주를 주로 연주하고 싶어 하며, 복잡한 악보의 곡들을 연주하는 일은 그리 많지 않기에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Scott Houston은 이런 생각을 자신의 프로그램에서뿐만 아니라 책과 DVD 등을 통해서 알리고 있는데, 너무 기본을 무시하고 gimmick에 치중하는 경향도 있지 않나 한다.) 다시 말하면, 클래식 피아니스트가 아니라면 거의 필요없는 기능들에 너무 치중한다는 말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재미가 없어지기도 하고…

그렇다면 바람직한 피아노 교육은 무엇일까? 정답은 없겠지만, 내가 어릴 때 배웠던 클래식 위주 연습 (바이엘, 하논, 체르니, 등)에서 벗어나, 기본적인 이론과 재미가 가미되는 교재를 선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하논과 같은 연습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렸을 때엔 지겨웠지만 다시 하논을 쳐보니, 손가락 연습에 하논과 같이 좋은 교재는 없다고 생각한다. 단, 손가락 연습이 전부는 아닌 것이다. 또한 하논을 필요 이상으로 할 경우에 생기는 관절염과 같은 부상도 조심할 필요가 있다.) 악보를 보고 생각없이 그대로 치는 것은 기계가 더 잘할 것이다. 쉬운 악보에서 점점 더 복잡한 악보를 보고 손가락 연습하는 것이 전부이어서는 안된다. 생각없는 연주를 하면 재미도 없을 것이고, 발전도 있기 어렵다. 생각있는 연주를 하기 위하여는 음악에 대한 이해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많은 피아노 선생님들이 이미 앞에서 언급한 딱딱한 교육이 아닌 기본적 이론을 가미한 재미있는 피아노를 가르치시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며, 이글의 취지가 피아노 선생님들을 폄훼하려는 것도 절대 아님을 강조한다.

그럼 보다 큰 교육이라는 관점에 비추어 기존의 피아노 교육의 문제를 세 가지 정도 제시하겠다.

첫 째, 생각할 기회를 주지 않는 주입식 교육이다. 현재 한국 교육의 문제인 주입식 결과 위주의 교육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특정 곡을 반복적으로 연습하면 누구나 암기하여 어느 정도 칠 수 있다. 그러나, 그 곡과 연습한 몇 곡은 잘 연주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발전가능성이 없다. 여담이지만, 피아노를 배울 때 “엘리제를 위하여”를 연습하여 피아노 선생님과 가족들앞에서 쳤던 기억이 있다. 그 곡만큼 배우기 쉽고 아름다우며, 누구나 바로 알 수 있는 곡이 또 있을까? 사실 한 달 정도 독학하면 누구나 그럴 듯 한 정도까지 연주할 수 있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아무리 쉬운 곡도 보통 사람의 연주는 어차피 피아니스트의 수준에는 미치기 어렵다. Valentina Lisitsa 라는 피아니스트가 얼마전 서울에서 네 번째 앙콜곡으로 이 곡을 연주한 영상이다.

내 생각에 보통 사람들이 피아노를 배우는 직접적인 목표는, 특정 곡들을 그럴 듯 하게 연주하는 것이 아니고, 노래의 반주를 하거나 내 감정을 연주를 통하여 표현하여 나 자신 또는 연주를 듣는 사람과 교감하는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체르니 30이니 체르니 40이니 하는 교육의 결과치가 보통 사람에게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음악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 즉, 보통 사람들에게 더 필요한 것은 대중음악의 연주에 필요한 scale이나 chord 에 대한 이해와 연습일지도 모른다. 한 가지 추가한다면, 피아노를 배우는 간접적인 목표는 피아노를 배움으로써 음악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는 일반적인 교육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특정 지식을 써먹기 위해 배우기도 하지만, 지식을 배움으로써 보다 큰 분야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를 높이는 것이 목표이기도 하다. 그러나, 주입식 교육은 써먹기 위한 곳에 어느 정도의 제한적인 도움을 줄 뿐, 이를 응용하고 보다 큰 문제에 적용하는 것에는 효과가 크게 없는 것이다.

둘 째, 현실과 교육과의 괴리가 크다는 문제가 있다. 위에서 지적하였듯이 보통사람이 얻고자 하는 것과 교육에서 제공하는 내용이 너무 차이가 나는 것이다. 대중 음악의 연주를 하고 싶은데, 레슨에서는 따분한 클래식 연습곡들만 주로 배우고 있다면 문제가 많다. 물론 연주의 기본을 위한 연습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받은 피아노 교육에서는 지나치게 연습곡들의 연주에만 치중했었다고 생각한다. 이를 일반 교육과 비교해 보면, 현실에서 적용되는 규칙과 배우는 지식이 다른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지식은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를 이루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어려서부터 몸으로 느끼면서 배운다. 우리의 학생들이 공부를 하는 이유는 시험을 잘 치기 위한 것일 뿐이다. 초중고 시절엔 좋은 상급학교에 가기 위한 수단이며, 대학교에선 취업 수단일 뿐이다. 예를 들어, 최근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보면, 높은 자리에 있는 분들 (예를 들어 검사 들)이 법과 현실을 구별 못하는 일들을 자주 보게 된다. 사법시험을 통과할 정도이면 매우 똑똑한 사람들이며 법을 이해하는 사람들이지만, 자신은 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왜냐 하면, 법 (이상)과 현실 (관습)은 다른 것이니까… 그들이 공부한 법은 사법시험을 통과하기 위한 지식일 뿐이라고 느끼는 것이 아닐까? 현실에 기초하여 무엇인가를 배우고 삶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수단으로써의 지식인 것이다. 그런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검사가 된다면, 법에 대한 철학이 없이 그저 무언가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헌법재판관들이 관습헌법이란 말을 부끄러움 없이 할 수 있고, 검사들이 법을 남용하는 일들이 최근처럼 계속 일어난다면, 이는 그들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사회에 대한 커다란 민폐가 될 것이다. 그런 현상들이 단순히 그들의 개인적인 부족함이 아니라, 비뚤어진 교육의 영향일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잘못된 교육은 배움에 대한 재미를 떨어뜨린다는 큰 문제가 있다. 피아노의 경우, 재미없는 클래식 연습곡을 치는 것과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연주하는 것을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연습곡도 필요하지만, 적당히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 재미없으면, 오래 배우지 못 할 것이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결국 재미를 잃고 그만 두거나, 피아노와 음악 자체에 대한 흥미도 잃을 수도 있다. 이는 쉽게 일반적 교육에 비유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역사를 배우며 무조건 세세한 사건들을 암기하는 것만을 치중하는 것과 역사 드라마를 통하여 역사를 배우는 것을 비교해 보면, 재미있게 배운 것이 기억에도 훨씬 잘 남고 효과가 있을 것이다. 물론 흥미만을 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적절한 재미가 없는 암기 위주의 학습은 시간 낭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내가 어릴 때 받았던 피아노 교육을 돌아보며, 문제점들을 보다 일반적인 교육의 문제점과 비교하여 보았다. 과연 바람직한 교육 방법이 무엇일까? 종합하여 보면, 결과가 아닌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한다. 내가 체르니 40까지 배웠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교육을 통하여 무엇을 배웠고 얼마나 즐길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또한, 암기식의 일방적 교육이 아니라 흥미를 유발할 수 있으며 현실을 적절히 반영한 교육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이런 교육을 하도록 내 자신부터 노력을 해야겠다.